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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씨(羅州 丁氏) 편
2008-06-25 오후 2:23:00 (주)성주자치신문 mail sjj@sjjnews.co.kr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본관(本貫)은 원래 압해(押海, 현 전남 신안군 압해면)였다.
    시조(始祖) 정윤종(丁允宗, 고려검교대장군)이 시거 이후 6세에 이르기까지 압해(押海)에 세거(世居)하였기 때문이다.
    여말(麗末)에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압해현이 폐현되고 나주로 배속됨에 따라 본관을 압해 또는 나주로 겸용해 오다가 영조(英祖)때 압해를 버리고 나주로 통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世 원보(元甫)때 검교호군(檢校護軍)의 직(職)을 따라 개경(開京)으로 올라와 덕수(德水)에 살았으며 조선조에 이르러 11世 자급(子伋), 12世 수곤(壽崑) 및 수강(壽崗), 13世 옥형(玉亨), 14世 응두(應斗) 등이 연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르면서 한양(漢陽) 가까운 경기 고양, 안산, 용인, 광주, 강원 원주 등을 세장지로 살아왔으며 시한(時翰, 18세), 범조(範祖, 22세), 약용(若鏞, 23세) 등 대학자와 문장가를 배출하였다.

    응두(應斗)의 사남(四男)중 삼남(三男)인 감사(監司) 윤우(允祐)가 퇴직 후 경북 예천군 용문면 복천(福泉)으로 낙향(落鄕)하여 그 후손들이 영남(嶺南)에 살게 되었는데, 그의 후손 중 효신(孝愼, 20세)이 구미시(龜尾市) 해평(海平)으로 이주하였고 그 아들 지원(志遠)이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사(慶尙都事)를 지냈다.

    지원(志遠)의 네 아들 중 넷째인 재즙(載楫, 1764∼1815)이 노후에 용암 죽전(竹田, 곰지골)으로, 둘째 재량(載樑, 1758∼1787)의 증손인 대형(大衡, 1822∼1875), 대혁(大赫, 1824∼1906) 형제가 초전(草田) 문덕(文德) 송천(松川, 소래)으로 각 이거(移居)하여 성주에 세거하게 되었으며, 지원(志遠)의 후손은 현재 150여호(餘戶)가 생업을 찾고 직장을 따라 구미, 성주, 대구, 부산, 서울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나주 정씨는 고려 중엽의 검교대장군 정윤종을 시조로 하여 무신과 문신이 고루 배출된 문중이다. 조선조에서는 중시조이며 우리나라 한문소설의 효시인 「포절군전」을 지은 월헌 정수강을 위시하여, 정옥형과 정응두 부자가 양대에 걸쳐 이상에 오르는 문신 명가이다.
    그 후 숙종 때는 철학자 우담 정시한, 정조때는 문장가 해좌 정범조, 그리고 역시 정조때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5백여권의 방대한 저술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설계 및 배다리, 거중기, 녹로 등을 창안하여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등을 배출한 가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는데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자급(丁子伋, 1423∼1487), 자는 여보(呂父), 관은 소격서령(昭格署令), 1460년(세조 6) 증광문과에 급제, 성균관학유, 직학을 거쳐 전교서박사, 풍처창주부, 승문원교리를 거쳐 낭천현감, 목천군수를 거쳐 소격서령(昭格署令)에 이르렀다.

    정수강(丁壽崗, 1454∼1527), 자는 불붕(不崩), 호는 월헌(月軒), 관은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다. 1477년(성종 8) 식년문과에 급제, 감찰 등을 거쳐 148년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부제학(副提學)으로 승진하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때 파직되었다. 1506년 중종(中宗)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강원도관찰사, 판결사, 대사간, 형조참의, 대사성, 대사헌을 차례로 역임하고 병으로 사직했다가 후에 병조참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를 지냈다. 당대의 문장가로 한문소설 「포절군전(抱節君傳)」을 지었고 저서로 월헌집(月軒集)이 있다.

    정옥형(丁玉亨, 1486∼1549),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시호는 공안(恭安), 관은 좌찬성(左贊成)이다.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 급제, 이조정랑시에 문재(文才)에 간택되어 어전에서 주역 등을 강론하고, 1536년 겨울 명(明) 황태자 탄생, 병조참판으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경기도 관찰사를 거쳐, 공조(工曹) 형조(刑曹) 예조(禮曹) 판서로 옮겼다. 형조판서때 법령조목의 전후 모순을 조절한 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을 저술했고 그 후 대사헌 예조(禮曹) 병조(兵曹) 판서(判書)를 지냈고 을사사화때 윤임(尹任) 등을 몰아낸 공으로 보익공신(保翼功臣) 3등에 금천군(錦川君)으로 봉해졌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을 지냈다.

    정응두(丁應斗, 1508∼1572), 자는 추경(樞卿), 호는 삼양재(三養齋), 시호는 충정(忠靖), 관은 좌찬성(左贊成)이다. 1534(중종 29) 식년문과에 급제, 삼사(三司)를 거쳐 1538년 호당(湖堂)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교리, 응교, 장령, 보덕 등을 지내고, 1545년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대사헌(大司憲)에 올라 부친의 병을 돌보기 위해 사직했다.
    그 후 8도(道)의 관찰사(觀察使)를 거쳐 1561년 다시 병조판서(兵曹判書

    <저작권자©성주자치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8-06-25 14:2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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